흔히 사람들은 ‘정치인 다 똑같다.’, ‘우리를 위해 일하는 놈 하나 없다.’ 등의 이유를 들며 정치 혐오를 한다. 그럼으로써 정치 및 사회에 무관심을 가진다. 그럼에도 해당 섹션에서는 우리가 사회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공정할 줄만 알았던 공채의 문제점, 사회적 요인을 전혀 배제한 채 질병을 개인적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행위 등 우리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과학이 말하지 ‘않는’ 보건사회 이슈에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은 논의에서 배제된 채 방치됨을 여실히 드러낸다. 저자는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사회적 약자들과 ‘입장의 동일함’을 지닐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탐구할 수 있게 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나? 의학은 신체 등 ‘물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의 범위에 속할 수 있다. 우리의 신체가 사회적으로도 변화하며 환자와 의료진이 계속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자연과학의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사회과학의 방법론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의료화가 심화하여 대증요법적 정책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과연 어떤 건강 불평등이 생기는가? 그리고, 이러한 건강 불평등을 위해서는 통합적 과학이 필요하지 않나?
현재 노동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질병에 걸린 사례는 특수한 구체적 사건을 ‘삶의 양식’이라는 추상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환원시키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 캐런 메싱은 중요한 개념인 ‘공감 격차’를 예로 들며, 사회적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대 의학에 대한 성찰을 끌어낸다. 또한 병원 청소 노동자, 백화점 점원, 은행원 등의 사례를 연구하며 부딪혔던 한계점과 가능성을 공유하며 통합적 과학을 지향하고 있다.
책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강조하듯,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노동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상호의존하는 존재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활동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한다면 사회적 과정과 선행 사건을 분리해서 보아선 안 되며, 개별 영역들에서 발생한 결과를 실체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인과 기제가 명확히 분석되지 않은 채로, 각 영역에서 발생한 결과를 일면적으로 모은 결과를 항상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대증요법적 정책으로 귀결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법안들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하거나, 정작 고통받을 때 도움받을 수 없는 유명무실한 법안이 되고 만다. 결국 각종 현장에서 나타나는 질병은 곧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어떤 현상에 대한 인식 부족과 공적 영역으로의 진입 실패는 수행 집단의 ‘전달의 무능력’에 의존하며(김명희, 2015),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과 존재에 대한 간극을 심화시키는 것이 건강으로 직결되고 있다.
캐런 메싱이 연구한 사례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질병이 먼저 제기되기보다 항상 뒷순위로 밀려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주요한 현안으로 등장하더라도 정치적 입장의 한 도구로 활용되거나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이슈의 중심이 되는 이들은 실질적인 논의에서 배제된 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가시화되더라도 여전히 비가시화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일찍이 뒤르케임도 말했던 ‘집합적 경향’, 즉 개인이 손쓸 수 없게끔 느껴지는 사회적 힘은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누락되기도 한다. 모든 사회는 자체적으로 고유한 집합적 경향을 가지며(Durkheim, 2017), 집합적 경향은 비가시적이지만 마치 물리적 사물의 현상과 같이 실재하며 마치 자기장과 같이 구체적인 세력을 행사한다(송재룡, 2008)는 점을 간과하고 주류의 신체에 맞춰 특정 집단들의 건강을 좌우하는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회적 약자들은 개인이 노력해서 ‘정상 상태’로 건강을 유지하기를 요구받게 된다.
실제로 아서 클라인만은 《사회적 고통》이라는 책에서 개인에게 발병의 책임을 전가하는 책임론이 실제로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한다. 질병을 개개인의 체질, 습관, 운의 문제로 질병을 보게 되면, 이로 인해 겪는 질병의 경험 역시 개인사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으로 질병 경험을 공유하기도 어려워진다(클라인만, 2004). 질병으로 인해 겪는 가족과의 문제, 금전적인 어려움 등 역시 불운한 개인사가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개인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는 한, 이들이 겪는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게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 한 몸의 건강을 잘 돌봐야 한다거나, 어려울 때를 위해서 보험이라도 하나 더 들어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강화하도록 한다(Arthur, 2002).
하지만 언제까지나 개인에게만 질병의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든 ‘집합적 경향’, 사회적 힘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다시 보이지 않던 고통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끔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짚어볼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사회적 약자들을 가두는 조건에 대항하는 일종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되찾을 방도를 함께 찾을 방법을 말이다.
그래서 의료화된 접근을 통해, 그리고 실증주의적 접근으로 인해 그동안 은폐되었던 사회적 층위를 되살리고 보이지 않는 고통의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더욱 나은 노동환경을 구성하는 정책을 상정할 때,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져 해결되지 못했던 사회적 조건을 제거하는 예방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막연한 미래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상태를 전제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연구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두 사회적 약자가 되자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다면,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질병을 얻게 되며 어떤 조건에서 사회적 고통을 겪는지에 대해 깊이 탐구할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더 큰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고, 그렇게 연결될 때 비로소 연대할 힘이 생길 것이다.
참고문헌
김관욱. 2019. “‘여러 몸’의 진짜 주인 되기: 노동운동으로서의 생활 운동에 대한 경험 철학적 민족지” 『한국 문화인류학』. 52(3): 273-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