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작품 속에 투영한다. 해당 필자들은 소설, 야담을 통해 해당 사회의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성 평등, 죄와 벌의 본질적인 의미를 통해 해당 문학을 읽고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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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인🐂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지식을 만드는 지식

‘죄’란 무엇인가? / ‘벌’의 의미는?

<죄와 벌>에서 말하는 죄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죄의식, 양심에 따라 절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죄와 벌>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무거운 벌이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죄’란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정의하는 ‘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죄와 벌의 주요 내용은 주인공인 라스꼴리니코프가 가지고 있는 죄의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소수의 선택받은 선각자들은 다수의 평범한 대중과는 달리 어떤 행위를 해도 죄가 되지 않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사상적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그 선택받은 소수라고 생각했다. 그가 소설 끝에 경찰서에서 자수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도 자기의 조는 살인을 한 것 자체가 아니라,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스트레스가 죄라고 생각한다. 선택받은 소수로서 걸맞은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예심판사 뽀르피리나 소냐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살인 자체가 죄라고 생각한다. 특히, 소냐는 ‘인간은 기생충이 아니다’라고 하며, 어떤 명분으로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소냐나 뽀르피리의 지속해서 갈등하고 논쟁하는 이유는 바로 죄에 대한 견해차 때문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한 견해는 유형지에서야 변한다. 꿈속에서 그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유럽으로 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 전염병이란, 사람마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병이다. 그 결과 세상이 지옥과 같이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라스꼴리니코프는 그 꿈을 꾸고 나서 완전히 생각을 바꾼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죄란,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죄의식, 양심에 따라 절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벌’의 의미는?

다음으로 ‘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 작품 제목이 죄와 벌인 이유와도 관계있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 죄를 저지른 사람 대부분 벌 받는 모습을 보인다. 살인죄를 저지른 라스꼴리니코프는 유형을 산다. 아내를 배신하고 음탕한 삶을 살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살로서 삶을 마감한다. 소냐를 모함하려고 한 루쥔은 사람들의 신망을 잃는다. 더구나 그들이 받는 벌도 각각 제일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점도 재미있다. 자신의 신념을 중시했던 라스꼴리니코프는 그것과 달리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수해야만 했다. 육욕을 중시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육신을 스스로 살해했다. 타인의 이목을 중시하던 루쥔은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버린다. 결국, 이 작품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무거운 벌이 따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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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 이강옥, ≪한국 야담의 서사세계≫, 돌베개

성평등, 성욕구의 표현, 그리고 야담

성차별은 현재에도 존재한다. 성에 대한 접근에서도 성차별적인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사회적 허용 범위가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 이전에는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조선 때는 많은 억압이 있었는데, 그런데도 여성의 정욕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야담에서 그 시도와 성차별적인 시선, 신분 차별까지도 엿볼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도 성별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은 오래되어 온 문제이다. 과거 “82년생 김지영”의 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 책을 읽어보았을 때, 내가 느끼기에는 어떠한 혁신적인 문구를 담아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는 부분이 없었다. 우리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여러 사람의 삶과 상황을 김지영이라는 한 인물에 함축하여, 묘사해놓았다. 성 평등은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실제의 불평등한 상황을 인지하고 지적하는 것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인터넷에서 왜곡된 정보와 가치를 많이 생산해내고 있다. 반면 그 외의 공적 교육 장소에서 성 평등은 구체적이지 못한, 추상적 형태로 접해져왔다.

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은밀하게 여기거나, 보수적이고 페쇄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과거 중학교 당시, 보건 선생님께서 보건 시간에 성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수업 시간에 가르치셨고, 성순결 서약서에 모든 학생이 도장을 찍도록 강요받았었다. 성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사회적 허용 범위가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 성차별적인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